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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필리핀에서 가장 큰 그림. 스폴리아리움 Spoliarium

민들레 씨앗 2024. 8. 20.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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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여행을 하고 돌아오며
본의아니게 필리핀 마닐라에서 스탑오버를 하게 되었다.
마닐라를 경유하는 편이었는데, 항공사 사정으로 경유 시간이 29시간으로 늘어난것.
 
그래서 어쩔수 없이(?) 마닐라에서 하루 시간이 났는데,
필리핀 국립 미술관에서 나는 이 작품을 보고 눈물이 왈칵 나려는 것을 참았다.
 

그림 크기 비교를 위해 옆에 사람이 있는 사진을 올려봄



1. 처음 봤을때 느낌?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 끔찍한 그림 앞에서 사진을 이렇게나 많이 찍는가 의아했다.
제목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그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림은 정말 컸고, (커다란 벽 하나를 가득 채웠음)
마주하고 있는 그림과 같은 작가였으며,
게다가 그 그림들은 필리핀 국보로 지정되어 있었다.
 
'도대체 어떤 그림이길래? '
 
궁금해서 바로, 필리핀의 역사도 찾아봤고,
스폴리아리움Spoliarium이 무슨 뜻인지 몰라 검색했더니 바로 필리핀 국가문화재가 떴다.
나는 네이버 지식백과의 설명을 읽고 나서야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 그림 작품 [스폴리아리움]에 대한 설명 검색해 봄.
 
(네이버 지식백과 내용을 요약정리했습니다.)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700135&cid=40942&categoryId=33050
 
[스폴리아리움]Spoliarium

스폴리아리움 전체 그림. (조명의 각도 때문에.. 눈부셔서 그림이 잘 안보이는 부분이 있어 안타까웠다.)
작가 이름 및 제목, 제작연도 등 안내판. (스페인이 필리핀에 준 선물?)



 
1) 작가: 후안 루나(Huan Luna), 필리핀 화가
 
2) 수상: 1884년 스페인 마드리드 미술전 금상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의 화가가 수상한 파격적인 결과였다.)
 
3) 작품의 가치: 현재 필리핀 국가문화재로 지정.
 
4) 장소: 마닐라 국립 미술관 1층에 전시 
 
5) 작품 내용: 피를 흘리며 죽은 검투사의 시체를 로마 군인이 끌고 가는 장면.
 
6) 작품 의미: 제국주의 시대, 로마의 잔임함과 검투사의 비극 묘사.
이는 스페인의 지배속에 고통 받고 있는 필리핀의 현실로 해석.
좌측에 죽은 검투사의 옷과 무기를 탐내는 탐욕스러운 무리들.
우측에 검투사의 죽음을 슬퍼하는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람
 
7) 크기: 가로 7m, 세로 4m 대형 캔버스에 그린 유화. 필리핀에서 가장 큰 미술 작품
 
8) 검투사를 그리는데만 8개월 소요
 
9) 영향: 필리핀의 사상가이자 소설가 호세 리살이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쓰기도 했음.
 
 
3. 나는 왜 어떤 부분에서 감명을 받고 눈물이 났을까?
 
그림을 설명을 읽고 다시 봤을 때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른쪽 울고 있는 여인



1) 우선, 나는 가장 먼저 고개를 차마 돌려 죽은 아들? 남편? 애인?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울고 있는 여인에게 눈길이 갔다.
(네이버 설명에는 노인이라고 되어 있지만, 나는 젊은 여인처럼 보였다.)
너무 슬퍼서 차마 남편(이라고 나는 생각함)을 볼 수 조차 없는 그 슬픔이 나에게도 몰려왔다.
남편이 검투사로 나갔을때부터 그녀는 이 결과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상한것처럼, 남편은 시체가 되어 끌려 나온다. 이것을 눈을 뜨고 어찌 차마 바라볼 수 있었을까.
아니면 슬퍼서 달려가는 것도 허락되어 지지 않았는지 모른다.
 

꿍꿍이를 생각하는 두 남자와 왼쪽의 대중들



2) 두번째로 그 시체를 바라보며 무언가 꿍꿍이를 생각하는 두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 시체를 보면서도, 그들은 무엇을 얻을 것이 없을까.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까. 기회를 노리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계산적인 사람들로 보였다. 사람의 죽음앞에서 그들은 슬픔보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시체를 끌고 가는 로마인들


3) 시체를 아무렇지 않게 끌고 가는 로마인들도 보였다.
시체의 죽음은 그저 한 과정, 프로세스일 뿐인 그들의 일. 그들은 시체를 보고 슬퍼하지 않는다.
그 시체를 치우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일일 뿐이다. 시체를 바라보며 다루는 그들의 감정이 무디게 다가왔다.
 
4)그리고 가장 슬펐던 장면은 이 현실을 모르는, 아니 관심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이다.
 
왼쪽 구석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아마도 열정적인 검투사의 전투장면에 열광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행사가 끝나자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음 행사를 기다리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주 좋은 좌석이 아닌것을 보면 그들은 특권층이 아니라 그냥 보통의 시민으로 보였다. 
행사 후에 다리가 잘린채 시체가 되어 끌려나가고 시체가 처리되는 장면은
보통 검투사 대결을 보는 대부분의 대중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관심도 갖지 않는다.
보통은 다 그렇다. 나도 그렇다. 
 
5)  우리는 눈 앞에 벌어지는 눈부신일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 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잘 모르고 관심도 잘 두지 않는다.
예를 들면 눈부신 패션쇼 뒤에서 아주 바쁘게 움직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나 음향사들, 쇼를 준비하기 위한 무대를 꾸미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물론 그런 것들을 다 알고 관심을 가질 수는 없지만,
 


사회 정치 뉴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보이는 뉴스에만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곳, 가려진 곳, 귀가 솔깃한 뉴스 뒤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우리는 모른채 살아가는 일이 많다.
 
끔찍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처리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픈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잇속을 계산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대다수는 그런 현실이 있다는 것을 모른채 눈부신 이벤트로 눈이 향해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아주 슬픈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 슬픔이 피부로 와닿아 슬퍼하는 가족들이 있다. 
 
나는 그 대중속의 한 명이다.
그것이 슬프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작은 소명 같은 것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우연인지, 
마닐라에서 프놈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창가자리에 앉았는데
밖에서 캐리어를 비행기로 옮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번도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가를 제대로 볼 수 있던 적이 없었다.
늘 비행기를 타고 다니기만 했고, 캐리어를 붙이고 찾기만 했다.

캐리어 트럭을 운전하는 사람들, 캐리어를 올리는 사람들, 비행기안에서 받는 사람들.
땀을 흘리며 비행기 옆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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