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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하루키)_9장 리뷰.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 (마지막 챕터) 본문

[매일 독서 리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하루키)_9장 리뷰.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 (마지막 챕터)

민들레 씨앗 2024. 7. 1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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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루하루 조금씩 읽다보니

10일동안 한 권을 읽는다.

 

큰 목표도 나누어 계획하면, 시간이 지나면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위해 매일매일 실현 가능한 작은 목표로 쪼개는 것이다.

 

 

2.

 

"나 자신이라는 그릇이 마치 애처롭고 별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와서 무엇을 한다해도 쓸데없는 일이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든다.

나는 이제부터 1.5킬로를 헤엄치고,

40킬로를 자전거로 주파하고,

10킬로를 달리려 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해서 뭐가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바닥에 작은 구멍이 난 낡은 냄비에 부지런히 물을 붓는 것과 같은 일에 지나지 않는게 아닐까?" p.234.

 

16살+40년=약56살에 트라이애슬론 스타트를 기다리며 무라카미 하루키가 느낀점이다. 

 

나는 마흔 두살인데,

지금 무언가를 시작한닥해도 쓸데 없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때가 종종 있다.

가령, 악기를 배우는 일 같은것 말이다.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첼로도 다 배워보고 싶은 마음은 많은데

이제와서 시작한다 한들, 얼마만큼까지 할 수 있을 것이며,

정점에 이르지 못하고 어설픈 연주로 끝나게 될 것을 생각하면

그동안 들이는 시간과 연습이헛된 것이 될까봐 선뜻 시작하게 되지 않는다.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캄보디아에 있어 캄보디아어(크메르어)를 공부하면서도

수없이 싸워온 것은 나의 동기를 다잡는 일이었다.

이것을 배워서 어디에 쓰나, 차라리 이시간에 영어를 공부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가면 쓸일도 볼일도없을텐데, 그동안 들인 시간이 헛수고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아무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도전에 대한 용기가 움츠러드는 것은 대부분이 겪는 감정인듯 하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도전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부러움과 함께 감탄하게 된다.

 

 

 

3. 

 

"만약 심신의 단련에 필요한 고통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일부러 트라이애슬론이나 풀마라톤이라고 하는, 

노력과 시간이 걸리는 스포츠에 도전할 것인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통과해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는 확실한 실감을, 적어도 그 한쪽 끝을, 우리는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의 설질은 성적이나 숫자나 순위라고 하는 고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 속에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인식에(잘 된다고 하는 가정이지만) 다다를 수도 있다." pp.255-256.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는 확실한 실감을. 느끼는 것일까.

 

 

4.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pp.256-257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를 다시 한번 되뇌여본다.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생각이 우선 들고,

 

그리고 다시 크메르어 공부로 돌아와서 비춰보자면,

그렇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캄보디아어를 거의 쓸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렵다는 크메르어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어려워서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는 것을 나는 해낸 사람이라는 은근한 자부심이 생겼다.

내가 들인 노력이 남았고, 그 노력을 통해 성취감을 느낀 내가 남았다. 

 

아주, 효율성이 없다. 그 시간에 영어를 더 공부하는것이 더 나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노력의시간'이 남았고, 

아무도 모를지라도 그것을 '이뤄낸 내'가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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