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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역사의 오스만 제국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세계사](임소미) 본문

[매일 독서 리뷰]

600년 역사의 오스만 제국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세계사](임소미)

민들레 씨앗 2024. 8. 2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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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토록 강성했던 오스만 제국은 왜 멸망했나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오스만제국 이야기 부분을 읽고 정리해 봅니다. 
 
(아니, 그동안은 참, 읽기도 싫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역사이야기인데,
하나하나 몰랐던 역사들을 알아가는 것이 너무 재밌네요^^.
 
이 역사를 읽으면, 또 연결된 저 역사가 궁금해지고, 또 이런 세계사 속에서 우리나라는 이런 상황이었네, 이렇게 시공간을 연결해서 생각해보는것도 재밌고요^^)
 
오스만제국. 정말 많이 들었었는데,, 
2004년도에 터키에 갔던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오스만제국 역사는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정독을 해봅니다.^^
20년전에는 읽었어도 이해를 못했음. ㅋㅋ


 
 
"동서양 문명을 잇는 제국의 탄생, 오스만 제국"
 
#오스만제국은?
 
1. 약600년간 존속하며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세 대륙 석권했던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
2. 존속기간, 영토, 영향력 등 엄청나지만 서양 중심의 역사관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아옴
3. 15세기. 오스만제국이 동로마제국(비잔티움 제국) 정복: 중세와 근세 구분 기점
4. 이로인해 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무역로 탐색, 대항해시대를 열게 됨
5.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해 지도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이슬람 세계의 맹주로 군림
 
#오스만 제국의 시작 #오스만공국
 
1. 1299년. 오스만 1세오스만 공국 세움
2. 정복 전쟁에 적극적인편
3. 첫 목표는 바로 옆의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

<참고>
1. 로마제국은 395년 동서로 분열
2. 476. 서로마 제국 몰락
3. 동로마 제국은 약 1000년을 더 이어감(로마의 정통성 계승)
4. 동로마 제국의 수도는 콘스탄티노플(옛 이름이 비잔티움, 지금의 이스탄불),
 - 서양학자들이 동로마제국을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부름 

 
4. 1326. 오스만 1세 병으로 사망. 그 아들 오르한 가지 Orhan Gazi가 수장인 '베이' 자리에 오름.
   (이즈음 동로마제국은 제국은 이빨빠진 호랑이)
5. 오르한은 실크로드 거점 도시 부르사Bursa 점령. 첫 수도로 삼음
 

부르사 위치. 이스탄불 아래쪽. 현재 튀르키예의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 오스만 공국의 첫 수도!!!!

 
 
#오르한의 똑똑한 외교 전략
 
1. 오르한은 비잔티움 제국을 이용해 유럽 진출의 문을 염
2. 오르한은 비잔티움과 정면 대결 대신, 제국의 황위 다툼을 이용함
3. 요한네스 6세의 황제 즉위를 도와주며 관계를 다지며 요한네스 6세의 딸 테오도라와 결혼
4. 비잔티움의 승인 아래 유럽의 관문이라 불리는 갈리폴리(현 튀르키예의 겔리볼루)를 점령하며 유럽땅 본격 진출
 

갈리폴리(겔리볼루) 위치. 오스만 공국은 겔리볼루를 차지하며 유럽쪽으로 진출하기 시작.

 
 
#오르한 다음은 무라드 1세
 
1. 1362. 무라드 1세 즉위. 오스만 제국의 기틀 다진 인물
2. 즉위하자마자 비잔티움의 주요 도시였던 에디르네(아드리아노플) 꿀꺽. 새 수도로 삼음. (수도를 유럽으로 옮긴 것)

에디른 위치. 무라드 1세가. 수도를 부르사에서 북서쪽 에디르네(아드리아노플)로 옮김. 유럽 진출의 야망이 보이는 수도 위치^^

 
3.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유럽 연합군을 무찌름. 발칸반도 국가 지배 시작. 

코소보 위치. 코보소는 세르비아 아래쪽 노란색 표시부분. 코소보 전투에서 이긴 오스만 공국이 유럽 연합군을 무찌름.

 
 
#무라드 1세의 간접 통치 #데브 시르메 도입 #예니체리(과일아님)^^ 육성 
 
1. 무라드 1세는 정복지에 간접 통치
2. 정복지의 군주를 죽이지 않고 기존 영토를 다스리게 함. 문화와 전통 존중
3. 대신 조공을 받고, 필요할 때 군사지원을 받으며 효율적으로 통치
4. 무라드 1세의 유연한 통치 방식은 훗날 오스만제국의 확장에 중요한 기반이 됨
5. 이를 통해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지역을 원활하게 통합하고 관리할 수 있었음. 
6. 정복지역의 불만을 최소화. 안정적인 제국 유지
 
7. 무라드 1세의 또다른 업적은 '데브시르메' 도입  Dev-sirme
  -오스만제국의 최정예 부대인 '예니체리' Yeniceri를 데브시르메를 통해 육성. 
  -무라드 1세가 신뢰할 수 있는 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됨(귀족 견제용)
 -  '예니체리' Yeniceri  : 새로운 군대라는 의미. 

[ '데브시르메'  Dev-sirme]
-정복지에서 고아가 된 10세 전후의 모번적인 기독교 소년들을 데려다가 관료예니체리(특별군대)로 키우는 인력 양성 제도. 
-유럽에서 온 기독교 소년들은 이슬람식 교육을 받으며 이슬람교로 개종
-충성스러운 엘리트 군인이나 관료로 성장
-데브시르메 출신은 전통 튀르크 귀족의 견제 세력이 됨
-전쟁터에서 대활약하며 16세기 오르만의 황금기를 열었음.

 
 -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니체리의 권력이 비대해지며 데브시르메는 출세를 위한 창구로 뇌물과 부정부패
 - 점차 능력과 충성도 떨어지는 인물들이 관리와 군인으로 선발.
 - 결국 오스만제국의 발전 저해 요소가 됨
 
 
#티무르 제국과의 목숨을 건 한판 승부 #니코폴리스 전투 #바지예드 1세 
 
 1. 무라드 1세를 이은 바예지드 Bayezid 1세(술탄의 칭호를 받으며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로 부상)
2. 뛰어난 군사능력
3. 1396년 니코폴리스 전투(니코폴리스 십자군.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 십자군 전쟁중 하나)
  -유럽연합군에게 대승을 거두고 군사력 과시. 바지예드 1세의 명성이 높아짐

니코폴리스 위치. (지금은 불가리아. 니코폴)

 
4. 아바스왕조의 칼리프에게서 술탄의 칭호를 받고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로 등장

<이슬람 지도자 용어 의미>
-칼리프: 종교적 권위를 가진 지배자
-술탄: 정치, 군사 등 세속적인 영역의 지배자 

 
5. 바지예드는 중앙아시아의 신흥강자인 티무르의 강력한 도전에 맞서야 했음. 
 
 
#오스만 제국은 티무르 제국에 패배
 
1. 15세기 초반 이슬람의 양대산맥: 오스만제국과 티무르 제국

<티무르제국>
-정치적으로는 몽골제국의 후예
-종족으로는 튀르크 민족성
-문화적으로는 페르시아 문화
-종교적으로는 이슬람

-칭기즈칸의 후예를 자처한 티무르가 1369년에 세움
-1401년에는 인도에서 서아시아까지 광대한 영토 차지.
-하지만 1507년. 우즈베크인에게 멸망.

-1562년. 티무르 제국 후예 바부르가 인도에서 무굴제국 건립. 이슬람의 새로운 강자가 됨. 

(티무르제국은 현재의 이란,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위치) 

 
2. 1402년. 앙카라 전투에서 티무르와 오스만의 자존심 대결. 티무르 승리
3. 바지예드1세는 포로로 잡혀감. 포로생활 중 사망. 
 
# 앙카라 전투 패배 이후
 
1. 1421. 메흐메트 1세가 위기의 오스만제국 다시 통합. 국력 회복
2. 무라드 2세. 내란 진압. 정치적 안정. 중앙집권 강화. 예니체리 개편
3. 무라드 2세. 1444. 직접 군대 끌고 바르나에서 십자군을 전멸시키며 대승 거둠

바르나 위치. 불가리아 동부에 있는 도시(지도에서 불가리아 동편에 파란색 글씨 표시부분)

 
 
#메흐메트2세의 콘스탄티노플 점령
 
4. 1451. 메흐메트 2세 즉위. 세계 제국 건설 꿈. 
1. 비잔티움제국은 급격히 줄어 수도 콘스탄티노플중심만 남은 상태
2. 1000년 묵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걸림돌. (높이 12미터. 두께 5미터)
3. 테오도시우스 성벽 덕분에 콘스탄티노플은 난공불락의 도시로 유명. 
4. 이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헝가리의 대포 제조 기술자우르반 고용. 
5. 우르반이 만든 대포 동원 1453. 비잔티움 제국 침략
 

테오도시우스 성벽. (1000년 넘은 동로마제국의 수도,콘스탄티노플의 방어벽, 현재 이스탄불에 남아 있다)

 
 
6. 메흐메트 2세는 해상공격도 병행
7. 골든혼만의 굵은 쇠사슬로 인해 배가 진입할 수 없자, 배를 끌고 산으로 올라가서;;;, 쇠사슬 지나 골든혼 안쪽으로배를 끌고 내려오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군사 전략의 한계 돌파.
8. 치열한 전투 끝.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 제국에 함락됨. 1453년. 비잔티움 제국 패망. 
 
#메흐메트 2세의 통치 #이스탄불 #밀레트 제도
 
1. 메흐메트 2세는 도시를 빠르게 재건. 오스만 제국의 새 수도가 됨. 국제적인 도시로 변모. 
2.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됨. 
3. 메흐메트 2세는 동서양 문화에 모두 깊은 관심. 다양한 종교 문화 공존
4. 밀레트 제도(오스만제국의 행정구조) : 각각의 종교 공동체가 스스로 고유성과 자치성 유지 허용. 
5. 밀레트 구성원은 세금내면서 정체성 유지. - 제국의 안정과 통일 유지 기반. 
6. 비잔티움의 학자와 예술가들이 서유럽으로 피난 가면서 유럽의 르네상스에 영향
7. 오스만 제국은 약 100년간 황금기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 #쉴레이만 1세
 
1. 1512년. 셀림 1세 등극. 영토를 두 배로 늘림.  
2. 이집트 정복.
3. 1517.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 자리를 넘겨 받으며 이슬람 종교 지도자 칼리프 자리가 오스만제국으로 넘어옴
4. 1922. 튀르키예 공화국에서 술탄제를 공식 폐지할 때까지 이스탄불은 이슬람 세계의 중심
5.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까지 오스만에게 귀속. 셀림 1세는 이슬람의 최고 통치자로 군림.
 
6. 1520~. 오스만제국의 최전성기. 술탄 쉴레이만 1세. 
7. 지중해의 패권 차지. 
8. 쉴레이만 1세 헝가리 공격. 1529. 오스트리아 공격. 빈 포위. 1532. 오스트리아 공격. 승승장구!!!
9. 헝가리 남중부 차지. 조공도 받음
10. 유명한 해적이던 바르바로사를 오스만제국 해군의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 
11. 1538. 프레베자 해전. 오스만 해군 vs 베네치아, 스페인, 로마교황청 연합 '신성동맹' 에게 승리. 
12. 16세기 중간. 쉴레이만 1세 사망하면서 점점 쇠락. 

프레베자 위치. 그리스의 북서부 도시

 
#유럽 열강들의 새로운 무역로 모색 #대항해시대 시작 
 
1. 오스만 제국의 팽창으로, 유럽열강들은 아시아와 직접 무역하기 위해 새로운 무역로 모색
2. 포르투갈은 세계지도를 그리며 모험 시작
3. 1492.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 신대륙인 아메리카 대륙 발견
4. 유럽 열강은 아메리카, 아시아에 식민지를 세우며 영향력 커짐. 
 
5. 오스만 제국은 16세기 후반부터 쇠약, 각종 부패, 권력 남용, 사회적 불만 증폭. 
6. 유럽 열강과의 기술 격차 심화
7. 오스만제국으로 인해 해상무역에 뛰어들기 시작한 유럽 열강들은 해군력이 강해져버림!!
8. 1571. 레판토 해전- 오스만 제국의 지중해 패권 종말.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이끄는 유럽 연합 함대에 처참히 짓밟힘.
 

레판토 위치(현재의 나프파크토스. 그리스 도시)

 
#오스만제국의 몰락
 
1. 17세기 중엽. 합스부르크가에 헝가리 반환
2. 1699. 카를로비츠Karlowitz 평화조약. 유럽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남. 
3. 18세기 중반부터 급성장한 러시아가 1783년 크림 지역 차지
 

크림반도 위치. 우크라이나 아래쪽 반도(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영토 분쟁 지역).

 
4. 1789년. 프랑스대혁명 발생(군주제와 귀족의 특권 부정):  세계에 국민의 주권과 자유 중시, 민주주의 물결
5. 19세기 중반. 발칸반도 각국 민족주의 운동 발생, 오스만제국 물러남
6. 발칸반도의 공백에 유럽열강들의 치열한 경쟁
7. 발칸반도: 기독교와 이슬람의 중간 지대로 다양한 민족과 종교간 충돌이 잦아 '유럽의 화약고'라는 별명.
 
8. 1914. 제1차 세계대전으로 폭발.
9. 제1차 세계대전 이후 22개 국가로 분할된 오스만 제국
10. 22개국 (모니타리,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수단, 지부티, 소말리아, 코모로,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오만,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오스만제국 안녕.. #줄을 잘 못섰음...
 
1. 1839. 오스만제국은 '탄지마트' 정책으로 근대식 개혁 시도. 하지만 성과 미미
2. 제1차 세계대전 발발시 오스만 제국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동맹국편에 줄을 서서.... 패전국으로 국가 산산조각;;
3. 1922. 최후의 술탄, 메흐메트 6세 폐위와 함께 623년의 역사를 가진 오스만제국 사라짐.
4. 이후 22개의 국가로 분할 및 끝없는 분쟁의 소용돌이.
5. 특히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아랍과 이스라엘 갈등 심함
6. 오스만제국멸망 다음해인 1923. 케말 피샤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튀르키예 공화국 건국
 
 
 
<느낀점>
 
긴 역사를 한줄 요약을 하자면,
 
6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진 광대한 제국이었던 오스만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 줄을 잘못서서,, 독일오스트리아 동맹국이었는데, 패전국으로 국가가 22개로 쪼개졌다. ?
 
 
1. 그런데,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그렇게 쪼개지지 않은것 같은데 왜 오스만제국은 그렇게 많이 쪼개졌는가?
 
땅이 워낙 넓은데다가,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고, 자치를 대체로 인정한 느슨한 조직이기도 했지만,
 
영국이나 프랑스,미국 등 당시 패권국이 볼때
저렇게 큰 나라는 두고 못보지.. 게다가 종교도 다르네? 민족도 다르네? 이러면서 
다같이 오스만제국을 분열시키고 아프리카 땅에 줄을 긋고,
아랍지역을 나눠버리고. 
그러다보니 같은 민족인데 국가가 달라지기도 하고,
서로 다른 이슬람 종파인데 한 나라로 묶이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끊임없는 분쟁이 발생하고,
그곳의 평화를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계속해서 군수물자도 팔고, 협상에 간여하고, 경제제재를 가하면서 여전히 관여하고 있는 것 아닐까?
 
2.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국가들과 아프리카 북부 지역의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에 속했었구나...
 
이들 22개 국가가 하나의 오스만공화국으로 묶여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엄청난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어마어마한 국력을 자랑하는 강대국이 되었을까?
 
3. 육로가 막히니 해상권을 뚫어버린 서구열강들.
 
오스만제국으로 막혀있는 육로를 고집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 해양탐험을 나선 서구열강들의 행보를 기억해야겠다. 
 
무조건적인 옳은 방향은 없다.
길이 막혔을때 미지의 새로운 세계는, 신대륙을 발견하게 해주었고,
뜻하지 않게 해군력 강화라는 결과를 가지고 왔으며,
세계의 패권을 쥐게된다. 
 
오스만제국은 육지로 계속해서 영토를 확장할 때, 서구열강들은 해상을 열었다. 
 
4. 강력한 지도자가 사라졌을때는 늘 혼란스러운 정세가 온다. 
오스만제국이 그랬다. 
어쩌면 그리 큰 존재감 없는 지도자가 안정적인 국가 유지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강력한 지도자가 있을때 엄청난 발전을 하겠지만,
그가 사라졌을때 나라에는 또다른 엄청난 후유증이 남는다. 급격한 쇠락이 있을수 있다.
 
늘 장단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강력한 지도자가 아니라도,
잔잔한 지도자일지라도, 역사적으로 바라볼때 큰 기념비가 없더라도
어쩌면 안정적으로 나라를 운영했고, 안정적으로 나라를 물려주는 것이 엄청난 업적일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5. 메흐메트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하기 위해 골든혼만에서 배를 들고 산으로 옮겨서 다시 배를 띄운 이야기가 인상적.
목표를 향해서, 누구도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냈다.
목표가 있다면, 어떻게든 이루게 되는 법이다. 고민하고 고민하면 방법이 나온다. 
비록 모두의 상식을 깨는 방법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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