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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요약 정리[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세계사](임소미) 본문

[매일 독서 리뷰]

제1차 세계대전 요약 정리[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세계사](임소미)

민들레 씨앗 2024. 8. 24.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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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 #사라예보 사건
 
사라예보에서 울려진 두발의 총성.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사라예보에서 암살된 사건.

사라예보는 보스니아의 수도이다. 당시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를 점령하였다. 보스니아에는 세르비아인이 많이 살고 있었다.

 
 
1. 발칸반도보스니아에는 세르비아인이 많이 살고 있었음.  보스니아와 통일하고 싶었는데,
1908년 오스트리아(게르만족)가 보스니아를 식민지로 만듦. 세르비아(슬라브족)가 오스트리아에 분노.
 
2. 1914년 보스니아에서 오스트리아군 군사훈련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 방문. 두 번의 총성과 함께 사망. -제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 사건'
*암살자: 가브릴로 프란치프. 보스니아에 사는 세르비아계 청년. 오스트리아에게 독립하고 세르비아와 통합을 희망했음.
 
3. 반란이 터졌다며 오스트리아 격분-독일에 지원 요청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전쟁 선포.
슬라브족의 큰 형님 러시아가 세르비아 보호를 주장하며 총동원령. 
이를 보고 독일과 프랑스도 총동원령. 
 
 
 
#사라예보 사건 이전에 정세 및 독일의 외교 과정 #빌헬름1세 #비스마르크
 
>19세기 유럽 특징: 산업혁명, 제국주의, 민족주의
 
1. 독일의 민족주의가 강력했으며, 독일연방 중 가장 힘이 센 나라 1위 오스트리아. 2위 프로이센
 
2. 프로이센의 국왕 빌헬름 1세비스마르크를 수상으로 임명. 
비스마르크는 철혈정책 발표:"독일의 통일 문제는 철과 피, 군대와 병력에 의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3. 1866.6.14.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발발. 프로이센 승리. 프로이센의 독일연방 내 주도권 획득
외교 천재  비스마르크는 나중을 위해 오스트리아를 독립국으로 두고 자존심을 지켜줌.
 
4. 1867년 프로이센은 북독일연방 수립, 유럽국가들의 독일 통일 견제
 
5. 3년뒤 프로이센-프랑스전쟁 발발. 프로이센 승리
1871년 1월 18일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는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전에서 황제로 즉위하며 독일제국 선포.
 
6. 비스마르크는 외교를 고민하며, 프랑스 복수를 막기 위해 프랑스를 철저히 고립시키고, 유럽의 현상황 유지를 위하여 1872년 러시아, 오스트리아와 '삼제 동맹'을 맺음- 프랑스와 러시아 동시 공격을 피하기 위해. 독일에 적대적인 프랑스 견제. 오른쪽 러시아와 손을 잡음. 오스트리아는 이미 우방국. 또한 영국을 안심시킴.(식민지 관심없다. 해양 패권 도전 욕심없다.)
- 최대한 적을 만들지 않고 독일 제국의 내실을 다짐.
 
7. 하지만, 대중은 비스마르크에세 등을 돌림. 독일의 화학, 철강 등 급속도 발전. 젊은 층이 우리도 영국처럼 식민지 경쟁을 해야하지 않나.
 
8. 1890년 젊고패기 넘치는 새 황제 빌헬름 2세가 75세의 비스마르크 해고!! 빌헬름 2세의 야망은 대영제국에 맞서는 독일제국 만드는 것. 해외 식민지를 위해해군력 강화. - 영국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행위. 영국독일 관계 악화
 
9. 빌헬름 2세. 러시아 손절. 러시아와 프랑스가 손을 잡음. 1892. 러.불 동맹.  프랑스가 비스마르크가 만들어둔 고립에서 벗어남. 
 
10. 영국은
1902년 일본과 손을 잡음(러시아 견제. 러시아가 당시 조선, 만주 등 남하정책 활발)
1904년 프랑스와 영국 협정. (독일 견제). 3년뒤 영/프랑스/러시아 삼국 협상 체결되기도.
 
11.유럽의 두 개의 세력 형성 
영국-프랑스-러시아  / 독일-오스트리아 
 
 
#사라예보 총성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의 흐름 #슐리펜계획 #벨기에저항 #영국참전
 
1. 독일의 슐리펜 계획-제1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점.
슐리펜 계획이란-독일이 먼저 프랑스가 있는 서부전선을 공략. 6주안에 프랑스를 이기고, 그다음 동부전선으로러시아군 격파한다는 계획
 
독일은 파리로 바로 진격하기보다 벨기에로 우회해서 파리 공격. 
예상과 달리 벨기에군의 엄청난 저항. 예상보다 시간 지체. 하지만, 슐리펜은 자신의 계획 고집.
벨기에가 다른 열강 손에 떨어지면 영국도 위협. 그래서 영국마저 독일에 선전 포고
영일 동맹 맺은 일본도 참전
보고 있던 이탈리아도 가세.
 
2.  1914. 9월 '마른전투'  제1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바꾸어놓음
 
벨기에를 점령한 독일이 파리로 진격. 
갑자기 러시아쪽 동부전선 전면전 시작.
병력일부 동부전선으로 파병.
영/프 연합군 공세(프랑스 마른강 유역)
프랑스. 택시 총동원령. 약 600대의 택시들이 6000명의 병력 마른 전선으로 이동. 
독일 철수. 
 

프랑스의 마른강 위치.(제1차 세계대전에서 마른 전투로 전쟁의 흐름이 바뀜)

 
 
3. 이후 4년간의 참호전 시작
북해(네덜란드 위쪽 바다)에서 스위스까지 참호를 파고 대치.
(*참호: 야전에서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시설. 보통 땅을 파고서 만든 것을 지칭함.)
 
1915년 4월. 이프르Ieper 전투에서 독일군이 최초의 화학무기인 독가스 살포.

이에프르 위치(벨기에 서쪽 지역)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최초로 독사를 사용한 전투 지역

 
1916년 솜Somme 전투. 영국 역사상 최초 탱크 투입.

프랑스 솜 지역.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최초로 탱크를 도입한 전투 지역

 
 
이후 전투기 개발. 공중전 시작
1916년 2월 21일  베르됭 전투. (1차 대전 최악의 전투)  
-독일의 목적은 프랑스군이 물자와 병력 모두 소모. 
-독일이 첫날부터 100발 넘는 포탄. 
-열달동안 4천발 가량의 포탄. 끔찍한 소모전.
-베르됭 전투에서 약 100만명 사망
 

프랑스 베흐덩(베르됭) 위치. 전쟁 박물관이 있다.

 
 
#전쟁의 판도를 바꾼 미국의 참전 #영국이그토록바랬던미국참전 
 
중립을 외치던 미국의 참전 계기
 
1. 루시타니아호 사건 
독일 잠수함 '유보트'를 개발하여, 연합군 선박 격침.
당시 영국 수상 처칠 "나를 정말 두렵게 만든 단 한 가지는 유보트였다."
 
1915년 5월 유보트가 영국 여객선 루시타니아호를 격침. 미국인 승객 128명 사망. 
1917년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작전으로 선박 마구잡이 공격. 미국 상선도 포함.
미국에 참전 여론이 일어남.
 
2. 치머만 전보 사건. 
1917년 1월. 독일의 외무장관 치머만멕시코에 전보 보냄
"멕시코가 미국을 공격하면 우리가 멕시코 너네 지원도 해주고, 빼앗겼던 옛 땅도 찾게 도와주겠다."는 내용. 
이 암호문은 1000개의 숫자로 만들어졌는데, 중간에 영국이 전보를 가로채 해독하고 미국에 알려줌.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1917년 4월 2일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 선언
이후 미국은 14개조 평화 원칙을 발표하며 앞으로 미국이 전쟁을 막는 강대국으로서 세계 평화를 주도하겠다고 함. 
 
미국의 참전은 전쟁의 결정적 변수가 됨. 
 
 
#러시아가 발을 뺌 #독일의레닌지원 #볼셰비키혁명 #하지만독일혁명발생
 
1.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남 
스위스에 망명중인 급진 좌파 블라디미르 레닌독일의 은밀한 도움을 받아 러시아에 귀국하더니
러시아 황제를 쫓아내며 정권 장악.
레닌은 소비에트 정권을 지키기위해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빠지겠다고 선언. 
독일이 모든 병력을 서부에 투입할 수 있게 됨
 
(* 볼셰비키란, 레닌이 이끄는 좌익의 다수파를 일컬음. 레닌주의자와 같은 의미.
 
볼셰비키 혁명, 러시아 혁명이란, 1917년. 전제군주국이었던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세계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이 탄생한 것)
 
2. 1918년 3월. 독일 서부전선에서 루덴도르프 공세 개시. 
미국이 연합군에 도착전 서부전선 격파를 위한 최후의 발악이었으나 독일 병사들 지침. 
 
3. 1918년 11월 킬 군항에서 독일군이 반란.
빌헬름 2세 황제 퇴위되고 네덜란드 망명. 독일에 바이마르공화국 건립= '독일혁명' 
1918년 11월 11일 독일 항복. 세계대전 종결
 
 
#제1차세계대전 종결 #300조원의배상금 #독일은 10억배물가상승 #새로운인물히틀러의등장...
 
1. 1919년 1월 18일 프랑스 베르사유궁전. 1차 대전 종결을 위한 파리강화회의. 
(1871년 1월 18일 . 베르사유궁전.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가 독일제국 선포하며 굴욕주었던 곳)
 
2. 독일은 1320억 마르크, 지금의 약 300조원의 배상금 지불. 독일경제 나락.
1923년에 독일 물가가 10억배 상승. ;;
 
3.뛰어난 연설로 히틀러가 새롭게 부상. ...제2차세계대전이 점점 다가옴.
 
 
<느낀점>
 
 
1. 치머만 전보 사건
 
영국은 독일의 유보트 잠수함으로 인해 엄청나게 골머리를 앓았다.
영국이 그토록 바랬던 미국의 참전은,
 
독일이 멕시코로 보낸 전보를 해독한 일인데,
그 해독을 영국이 해서 미국에게 알려주었던.
 
치머만 전보는 정말 독일이 원한 전보였을까?. ....미국의 참전을 위해.. 일으킨 사건은 아닐까. 
혹시나 레닌처럼, 치머만도 뒷거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의심.^^
 
2. 레닌을 도와준 독일.
 
동부전선에 조금이라도 힘을 빼기 위하여, 러시아를 물러나게 하기 위해
독일이 레닌을 도와 러시아 혁명을 일으키게 한 것. 
 
레닌은 독일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레닌이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킨 동기는 나라를 위해서일까.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해서였을까.
 
아무튼, 전쟁이 치뤄지는 중간에도, 전략가들은 '개인'의 야망을 움직여서 전세를 바꾸기도 한다. 
 
3. 비스마르크를 쫓아낸 프로이센의 빌헬름 2세.
 
빌헬름 2세가 조금더 나이든 비스마르크의 말을 들었더라면, 제1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외교의 천재로 알려졌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런 평가를 받은 것일까?
당시에는 국민들의 민심을 잃었다고 하니, 당시에는 고리타분하고 안정지향적인 노인정치가로 비춰졌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경험이 많은 어른들의 말을 들어서 나쁠것이 없다;;
 
4. 제1차 세계대전으로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많은 전투가 일어났구나.
독일과 프랑스는 서로 사이가 매우 안좋을것 같은데, 지금은 서로를 인식하는 것이 많이 바뀌었을까? 
 
5. 1914년부터 1918년 약4년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구나. 
이 때 우리나라는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었을 때(1910~)였다. 
1919년 에 우리나라는 3.1운동이 일어났고,
1919년 파리강화회의. 
파리강화회의 소식을 듣고 대한민국임시정부 명의의 탄원서를 들고 김규식(신한청년당 대표)이 파견되었다.
하지만, 일본이 당시 영국과 손을 잡은 상태라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의 지위였다.
우리나라의 독립문제는 안건으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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