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e Note.

도스토예프스키[가난한 사람들] 리뷰. - 쓰다 만 첫 두어 줄을 보실 때면 그 다음은 머릿속으로 떠올려 읽어주세요. 본문

[매일 독서 리뷰]

도스토예프스키[가난한 사람들] 리뷰. - 쓰다 만 첫 두어 줄을 보실 때면 그 다음은 머릿속으로 떠올려 읽어주세요.

민들레 씨앗 2024. 9. 16. 19:12
반응형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다 읽었어요. 저는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제목을 뭘로할까. 고민하다가 바꾸었어요.^^


 
전체적인 줄거리는,
나(마카르)는 나이 많고 혼자 적은 월급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관리입니다.
멀고먼 친척 바르바라(열일곱살쯤의 여자)가 고아가 되면서, 그녀에게 생활비를 보내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는 이야기에요. 
 


가난한 마카르가 상황에 따라 감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나와 있어요.
 
처음엔 
행복합니다. 자신의 방을 부엌옆 단칸방으로 옮기고, 생활비를 바르바라에게 보내주고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요.
 
다음에는,
놀라지 않았을까 해요^^
바르바라가, 자신의 일기를 보내주는데,
그 일기속에는 바르바라의 첫사랑 이야기가 들어 있었거든요.(이 일기속 이야기가 진짜 재밌음!^^)
 
그다음에는 절망합니다.
점점 생활이 어려워지는데,
술을 많이 마신모양이에요. 술주정뱅이로 소문나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가 바르바라 귀에도 들어갑니다.
 
다음으로는...
바르바라가  돈을 오히려 조금식 보태주는 상황에 이릅니다.
 
간신히 돈이 다시 생기게 되었을때
그동안 부정적으로 봤던 것들에 대한 시선이 달리짐을 느낍니다.
너그러워진달까요?
 
하지만, 이 때
바르바라는 돈 많은 비코프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바르바라가 비코프와 결혼하면  비코프는 마카르에게 그동안 보살펴준 댓가로 500루블을 보상으로 준다고도 했거든요.
 
아마도, 바르바라는, 이렇게 하면 마카르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을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 싫지만, 이 사람의 청혼을 받아들이면
마카르에게도 돈이 생기고,
또 자신을 돌보느라 마카르가 또다시 무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떠나기로 결심한것 같아요.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저만의 해석을 한 번 해볼게요.^^
 
1. 과도한 사랑은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고 그 부담은 그녀를 떠나게 만듭니다. 
 
생활비를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바르바라는 충분히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선물을 보냅니다. 사탕도 보내고, 화분도 보내고, 옷도 보내주고,
물론 능력이 되면서 보내주신다면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그런데, 바르바라는, 마카르가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생활비를 보내주기 위해 마카르는 아주 좁은 부엌옆 칸막이를 설치한 작은 방으로 옮기게 된것도 알고, 
돈이 없어서 단추가 떨어진 외투에 밑창이 다 닳은 부츠를 신고 다니는 것도 압니다.
힘든 형편인것을 아는데도, 무리해서 보내주는거에요.
 
2. 완곡한 거절방법
 
바르바라는, 꿈에도. 마카르를 이성으로 사랑한적은 없는것 같아요.
그런데, 마카르는, 자꾸 이성적인 감정을 느꼈던것 같아요.
 
아주 고상하게, 마카르를 거절한 방법이, 저는 바르바라가 일기장을 건네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르바라가 선물한 그녀의 일기장은,
그녀의 첫사랑, 포크롭스키에 대한 그녀의 솔직한 마음이 담겨있거든요.
 
바르바라는, 자신을 도와주는 마카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자신이 아주 행복했던 시절의 일기장을 찾았다며 읽어보라고 선물했지만,
이것을 받은 마카르는,  절망, 아니 현실을 자각했을것 같습니다.
마카르는 거의 50이 다된 아저씨였는데, 
 
'그렇지, 이렇게 어린 아가씨였지, 내가 사랑할 존재는 아닌거지,
이렇게 대학생을 사랑하고 청년을 사랑할 나이지.' 라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일기장을 읽으며 그녀의 첫사랑과 그녀가 책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책을 읽기 시작하는 마카르. 하지만,
 
저는 독서의 차이가 가난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를 만든게 아닌가 합니다.
 
바르바라는, 첫사랑 포크롭스키가 선물해준 덕분에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음으로써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것 같다고 표현합니다.
책이 그녀의 존재 전부를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고 해요.
제가 가장 인상적인 부분 남겨볼게요. 
 
 

벌써 1년이 넘도록 옆에 살았지만, 그때까진 한 번도 그의 방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심장이 가슴에서 튀어나올 것처럼 세차게, 아주 세차게 뛰었다. .. 책상과 의자 위엔 종이가 가득했다. 책과 종이뿐이었다! 나는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고, 또 그와 동시에 뭔가 불쾌하고 비통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나의 우정, 나의 사랑하는 마음이 그에겐 부족할 것 같았다. 그는 박식하지만, 나는 멍청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읽지 않았다. 책 한 권 읽지 않았다..... 난 질투 어린 눈빛으로 책으로 꽉 들어찬 기다란 선반들을 쳐다봤다. 비통함과 우울함, 어떤 광기 같은 것에 사로잡혔다. 그의 책을 하나도 빠짐없이 가능한 한 빨리 읽고 싶어졌고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모르겠다, 어쩌면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나도 터득한다면 그와의 우정에 더 당당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며칠 후 어머니가 갑자기 위독해졌다. ..  어머니 침대 옆 안락의자에 앉았는데 11시쯤에 포크롭스키가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문을 열어줬다. "혼자 있기가 지루할 거에요." 그가 말했다. "자, 이 책 받아요, 그렇게 지루하진 않을 거에요." 나는 책을 받았다. 그게 무슨 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비록 밤새 잠은 안 잤어도 책을 들여다봤을 리가 없다. 

 
 

어머니는 회복되어 갔다. 포크롭스키는 책을 자주 갖다 주었고, 난 처음엔 잠들지 않으려고 책을 읽다가 나중엔 좀 더 집중해서, 더 나중엔 욕심을 내어 읽었다. 불현듯 내 앞에 수많은 새로운 것들, 지금껏 알지 못한 낯선 것들이 펼쳐졌다. 새로운 생각들, 새로운 인상들이 풍성한 물줄기가 되어 한꺼번에 가슴속에 밀려들었다. .. 어떤 기이한 혼돈이 내 존재 전부를 흔들어내기 시작했다. .. 나는 지나치게 공상적이었고, 그것이 나를 살렸다. 

 
 
 
4. 하지만 마카르는, 흥미위주의 소설만을 읽을 뿐이었고,
그가 추천한 책에 대한 바르바라의 평은 정말 형편없는 소설이라고;;
 
 
5. 독서의 차이가 가난해도, 삶의 태도에 차이를 만들어낸것이 아닐까요. 
 
가난한 고아 신세의 바르바라는 그래도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가난을 극복해보려는 의지가 보입니다.
하지만 마카르는 오히려 자신의 삶을 바로 제어하지 못하고, 무조건 퍼주기도 하고, 술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돌볼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6. 하지만 마카르도 변합니다. 사랑의 힘일까요?^^
 
마카르의 직업은 정서하는 하급관리였어요.
정서라는것은 다른 사람이 작성한 문서를 바른 글씨로 따라 쓰는 일입니다.
 
늘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따라만 써왔던 그가
바르바라에게 편지를 씁니다. 창의적인 글쓰기를 시작한것이죠.
비록 그것이 끝나버리긴 했지만,
그는 바르바라가 남겨놓은 문학선물을 받습니다.
 
바르바라는 마지막에 이렇게나 아름다운 편지를 남겨요.
 

착하고 더없이 귀한, 하나뿐인 내 친구님! 당신께 제 책과 자수틀, 쓰다 만 편지를 남깁니다. 쓰다 만 첫 두어 줄을 보실 때면 그 다음은 머릿속으로 떠올려 읽어주세요. 당신이 제게서 듣고싶었던, 또는 읽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요. 제가 당신께 썼을 법한 것들, 하지만 지금은 쓰지 못한 것들을요! 당신을 굳게 사랑했던 가엾은 바렌카를 기억해주세요. 

 
 
쓰다만 편지를 남기다니요.
 
이렇게 멋진 편지가.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마카르 스스로 상상하라고 해요.
이 마지막 편지에서
어쩌면, 바렌카도, 마카르를 조금은 사랑한 마음이 싹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바르바라는 첫사랑으로 인해 느꼈던
 
"나는 지나치게 공상적이었고, 그것이 나를 살렸다."
 
의 삶의 방식을 마카르에게 선물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7. 정말 재밌게도, 맨처음의 글 

오, 이런 글쟁이들 같으니라고! 무언가 유익하고 즐겁고 흡족하게 하는 것은 쓰지 않고, 땅속에 묻힌 온갖 진실들을 파헤치다니...!이젠 글쓰기를 금했으면 싶다...!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읽다 보면... 뜻하지 않게 생각에 잠기게 되고 온갖 터무니없는 것들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정말이지, 글쓰기를 금했으면 싶다, 아무튼 그냥 완전히 금했으면 싶다. 

-블라디미르 오도옙스키,[살아있는 송장]

 
이렇게 시작되는 책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마카르도, 글을 통해 뜻하지 않게 생각에 잠기게 되고,
추억에도 잠기고, 생각에도 잠기고, 그녀를 떠올리는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겠지요. 이제는 깊이있는 문학의 길로 들어선 것인지도 몰라요. 정서만 하던 그가,  창의적인 글쓰기의 정수인 '시'를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 (저의 상상입니다.) 
 
 
8. 다시 읽고 싶은, 소설입니다. 
다시 읽으며 문장들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고 싶은 소설입니다. 
 
 

반응형